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갱년기에서 살아남기

갱년기는 운동이 최고라고?

by 체리사랑 2018. 11. 22.

한 두달 전부터 갱년기 증상이 부쩍 심해졌다.

낮에는 그럭 저럭 참아낼 수 있었지만

밤이면 온몸에 퍼지는 열감에 요즘같이 쌀쌀한 날씨에도 선풍기를 켜야만 잠들 수 있다.

늦게 학원에서 온 아이 간식을 챙겨주고 집안 일을 마무리 하면 12시가 훌쩍 넘겨야 잠자리에든다.

이불에 엎드려 휴대폰과 책을 보다 포로록 잠이 들었는데

온몸에 화라락 불기운이 올라오는 것 같아 얼른 선풍기를 켠다.

얼굴로 바람을 맞다가 눈이 시려 잠결에 돌아눕는다. 한참이 지나면 등이 서늘해 스위치를 더듬어 선풍기를 끈다.

그런데 이렇게 켜고 끄고가 밤새 무한 반복.

아침이면 몇번을 켜고 껐는지 기억이 가물하다.

무엇보다 갱년기 증상 중 나를 난감하게 하는 건 기분 또한 종잡을 수 없어진다는 사실이다.

뜨거운 열기가 온몸에 훅 끼쳐올 땐 왠지 모를 억울함과 분노 같은 불쾌한 감정이 올라와서 근거 없이 아이한테 짜증이 나고 남편이 얄미워진다.

 

얼마전 이런 갱년기 증상이 너무 힘이 들어 병원에 가야겠다고 하니

남편을 비롯한 지인들이 다 말린다.

일단 운동부터 하라며 다 늙어가는 과정이니 받아들이라고 한다.

날 사랑하는 사람들의 조언이니 약에 의존하기보다는 좀더 안전한 운동부터 먼저 해보기로 했다.

약을 먹게 되도 운동은 당연히 병행해야하는 것이란 생각이기도 했다.

운동 좋은걸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태생이 땀 흘리는 걸 싫어해서 여태 요리 조리 피해만 다녔는데

이젠 생존을 위해서 운동을 해야했다.

 

이번주 요가를 등록해 월요일 부터 시작했다.

인근 아파트 단지 휘트니스 센터에서 하는 프로그램으로 밤9시부터 한 시간 가량이다.

요가 강사는 그런 센터에서 흔히 마주치는 쭉쭉빵빵한 몸매의 소유자가 아닌

야윈 모습에 도를 좀 닦았을 것 같은 외모를 가졌다.

늘씬한 아가씨도 몸매 좋은 아줌마도 없이 편안한 분위기에 배우는 것인 만큼 내 이 비루한 몸도 부끄러워하지 않으며

마구 비틀고 뒤집고 꺽는다.

요가를 처음 시작한 날 눈물이 찔끔 날뻔했다.

옆구리가 늘어나지도, 구부려 손이 바닥에 닿지도, 온몸을 틀어도 뒤가 잘 보이지도 않는 내몸.

난 그동안 내몸에 무슨짓을 했던 건지.

한없이 늘은 뱃살, 굳어질대로 굳어진 근육들.

내면의 미를 추구한다고 고상 떨고 살며 책을 읽는다, 그림도 그린다며 나름 관리 좀 하는 척 했다.

그러나 내 영혼의 보금자리인 몸은 돌처럼 굳어 생명을 잃어가고 있었다.

 

오랜 동안 출산후 이전보다 40프로는 늘은(차마 몸무게는 밝힐 수 없다) 체중으로 살아가면서도

얼굴은 아직 봐줄만 하다며 내가 내 몸에 지은 죄에 면죄부를 주었었다.

그런데 요가를 시작하며

작은 동작에도 너무 힘겨워하며 고함을 지르는 내 근육과 몸뚱아리를 마주하니

눈물이 나도록 어리석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관절을 부드럽게 해주고 근육을 살려주는 운동을 더 일찍 했어야 했다.

 

갱년기 증상이 심해지며 얼른 해결을 해보려고 인터넷을 온종일 헤매고 다녔다.

무슨 특효약은 없는지. 남들은 어쩌고 있는지.

그러다가 칡을 먹어라. 석류가 좋다더라. 호르몬 치료는 안전하다 영양제처럼 구할 수 있는 호르몬 대체제품이 있다더라.....

많은 대안들이 있다는 걸 알았다.

그러나 그 대안에도 불구하고 결론은 그 모든 것이 개인에 따라 차별화되고 부작용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갱년기에 대해 '우울하다', '분노가 치밀어오르고 지난 과거가 후회된다'.

'사춘기 보다 더 무서운게 갱년기이다'라며 힘들어하는 글들은 너무도 많았지만

긍정으로 다뤄진 글은 별로 눈에 띄지 않았다.

 

갱년기를 겪고 있는 내 또래 여자들이 불쌍하게 느껴진다. 갱년기라서가 아니라 딱히 함께 해주는 이가 없기 때문이다.

미국 이민을 가있는 둘째 언니는 나보다 다섯 살이 위로 먼저 갱년기 터널을 지나고 있다.

미국은 여성이 갱년기가 오기전에 40대 중반 부터 갱년기 증상 예방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이 제도화되있다고 한다.

그에 비해 우리나라는 그저 성격 좋은 엄마가 성질 덜 부리고 넘어가 주길 바라고

운이 좋아 갱년기 증상이 가볍게 와주면 고마운 상황이다.

많은 여자들이 갱년기 증상은 그저 아는 언니 동생 친구와 하소연 하며 개인의 선에서 알아서 헤쳐나가고 있다는 게 안타깝다.

이제 나도 그 선에 서있다.

 

앞으로 수년간 밤잠을 설치며 열이 오르고

불쑥 불쑥 과거일이 생각나며 우울감과 분노가 교차하는 심리적 증상이 올 수도 있다.,

이런 나를 위해서 요가를 시작하고

12월 수영을 하며 돈벌이보다는 내 자신을 관리하는데 에너지를 쏟아보려고 한다.

비행기가 추락할 때 아이가 아니라 엄마가 먼저 산소마스크를 써야 아이를 살릴 수 있다는 안내 방송이 나온다.

내몸에 불부터 꺼야 아이도 남편도 편하다.

 

요가, 수영이 내 몸의 화기를 식혀주는 것이라면

블로그 글쓰기는 내 정신의 열기를 내려줄 것이란 기대를 한다.

누가 본다 한들 부끄러울 것도 없다.

그저 글 재주 없는 아줌마의 넋두리인걸.

한 석달 운동과 글쓰기로 열을 내려 보고

여의치 않으면 겸손히 병원의 문을 두드려 볼 예정이다.

(지난 달 건강 검진의 결과엔 갑상선등 특별한 질환이 없었으니 질병에 부분에선 크게 염려할 일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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